[생각] 어떤 실험에 대한 결과들

보통 어떤 이론을 설명할 때,
어떤 집단에는 이론을 적용하고,
어떤 집단에는 이론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이론을 적용한 집단에서 ‘놀랍게도’ 이러한 결과가 있었다로 마무리 된다.마치 그 이론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사실인 것마냥…

사실 이 실험에는 엄청난 오류가 있다.
실험 대상이 같지 않다는 것!
사람은 모두 다르다, 유전자도, 부모님도, 성격도, 외모도,

같은 질병이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누군가 정의하지만,
병의 깊이가 다르고,
병을 감내하는 인간의 의지가 다르고,
이 사람이 완치 확정을 받을 확률도 다르다.

한 가지 조건을 다르게 해서
두 집단을 실험한 결과는 절대 인정될 수 없다.
애초에 공통된 하나로 묶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MZ, 참 불편한 단어이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처럼 만드는 것,
더 원론적으로는 사춘기, 중2병,

생물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는 당연히 다 그 때 그런 집단이 되어버린다.
갱년기, 노처녀, 꼰대, 나 스스로를 누군가가 정의한 틀에 집어넣는다.
나는 중2니까 그래도 돼, 난 고3이니까 그래도 돼, 나는 그래도 돼…

우리 인간은, 나는, 누군가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이다.
이런 세상이 만들어둔 흔한, 정의된 것으로 정의할 수 없는
아주 남다른 존재이다.

나 스스로를 흔한 집단의 흔한 사람처럼 만들지 말 것.

나를 어떤 단어로 정의하고 안심하는 행위는 이제 버리자.

나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오늘은 이게 맛있었지만, 내일은 제거 맛있는 나는 매일 변하고,
나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된다.

요즘 데이터화를 많이 한다. 정보를 수집하고, 결과를 산출한다.
데이터를 가지고 정의하고 예상한다. 또 맞는다.
일원화된다. MBTI로 나를 정의한다. 끼어맞춰진다.
서로 정의하기를 즐겨한다.
혈액형으로 또 정의한다.

집안 성씨로 나를 정의한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안하고 싶을 때도 있는거 아닌가?

왜 자꾸 다들 자신을 특정한 무언가로 정의하려고 할까.
로봇이 아닌 이상, 우리는 정형화 될 수 없다.

테토남, 에겐남…이런 허접한 단어에 나를 자꾸 끼우지말자.
나는 너무 소중하고,
정의할 필요도 없는 존재 자체가 의미있고 대단한 사람이다.